
옛말에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죠.
비슷한 뜻의 속담으로는 ‘속빈 강정’, ‘싼 게 비지떡’이 있겠습니다.
요즘은 저렴하게 구매한 물건의 품질이 썩 만족스럽지 못할 때, 이런 속담을 상품 후기로 자주 남기더라고요.
그런데 이 ‘개살구’와 ‘강정’ 그리고 ‘비지떡’이 오히려 인기를 얻고 불티나게 팔릴 때가 있습니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다소 부족한 품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거겠죠.
최근 균일가 생활용품 판매점 ‘다이소’가 제약사들의 건강기능식품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3천원 건기식’, ‘초저가 건기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굉장히 우호적입니다.
반면, 약사들은 약국 건기식과 다이소 건기식의 성분이나 함유량과 원산지, 용량 등에서 차이가 분명하다며 다이소 건기식에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번 [문형민의 알아BIO]에서는 최근 불거진 ‘다이소 건기식 사태’와 집단 간 갈등, 그리고 건기식의 유통망 다양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니다.

◇ ‘다이소에는 다 있어’…건기식에 뿔난 약사들?
다이소는 지난달부터 일양약품, 대웅제약, 종근당건강과 협업해 전국 200개 매장에서 비타민, 루테인 등 35종의 건기식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분과 함량을 조절해 가격을 약국 대비 10~20% 수준인 3천~5천원의 낮은 가격에 판매하자 소비자 반응은 역시나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이후 약사들의 거센 반발이 일자 일양약품은 다이소 출시 닷새 만에 돌연 사업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당시 대한약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유명 제약사가 수십년간 건강기능식품을 약국에 유통하면서 쌓아온 신뢰를 악용해 약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생활용품점에 공급하는 것처럼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에 대해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건기식의 성분이나 함유량, 원산지, 부재료, 용량, 포장 비용 등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가격'만을 부각시켜 홍보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약국은 건기식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했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일부 약사는 "다이소에 입점한 제약사의 다른 의약품을 모두 반품하고 판매하지 않겠다"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한약사회마저 '앞으로 제약사가 약국에 공급하는 건기식의 공급가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지 지켜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죠.

◇ 소비자 “약국의 횡포”…공정위까지 나섰다
소비자들은 이를 '약국의 횡포'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부당한 조치이자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가격과 품질의 제품이 공존하며 공정한 경쟁을 자유롭게 하는 시장 환경이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며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불공정거래 행위는 강력히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약사회의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현장조사에 나섰습니다.
사업자단체인 대한약사회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제약사가 다이소에서 건강기능식품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면 법 위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상황을 두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 속에서 과거 '갑·을 지위'에 매몰돼 있던 약사들이 부메랑을 맞은 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미 다이소에서 식품을 구매하고, 새벽배송으로 건기식을 배달받고 있는데 제약사의 유통 채널을 제한한다고 해서 약국 건기식을 구매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 시장 빠르게 커지는데…난처한 제약업계
이렇게 약사와 소비자의 입장이 극명히 갈리는 상황에서 제약사들만 난처해졌습니다.
대웅제약과 종근당건강은 다이소에서 건기식 판매를 지속하고 있지만, 제품 확장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입니다.
공정위 조사 등 각종 결과를 지속적으로 검토한 뒤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조만간 편의점에서도 건기식을 만날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편의점업계가 제약사와 손잡고 합리적인 가격에 건기식 소용량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인데요.
먼저 움직이는 곳은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입니다.
CU는 지난해 10월 선제적으로 전국 매장 3천 곳을 건강식품 진열 강화점으로 선정하고 40여 종의 상품과 특화 진열대 등을 도입했습니다.
올 상반기 중에는 강화점을 5천 곳까지 늘리고, 이달 안에 업계 단독으로 동아제약의 건강식품 ‘비타그란’ 4종과 ‘아일로 카무트 효소’ 1종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다이소 건기식 판매에 대한 약업계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편의점 건기식에 대한 반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렇게 각종 진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건기식 유통망 확대를 놓지 못하는 건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어섭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기식 시장 규모는 2020년 5조1,750억원에서 2022년 6조4,498억원으로 급성장했고요. 지난해 규모는 6조440억원으로 추산됩니다.

◇ <별check부록> 실제 함량·성분 얼마나 다를까?
<별check부록>은 [문형민의 알아BIO]에서 다룬 내용들의 팩트를 별도로 체크해 정리 및 소개하는 ‘코너 속 코너’입니다.
다이소 건기식과 약국 등에서 판매하는 건기식의 성분, 함량 차이를 알아보겠습니다. 대표적으로 대웅제약의 '칼슘·마그네슘·비타민D' 제품을 비교해 볼텐데요.
다이소의 경우 칼슘 함량이 210mg(밀리그램)이지만, 약국 등에서 판매하는 유사한 제품인 '칼슘마그네슘디'는 칼슘 함량이 이보다 높은 300mg입니다.
마그네슘과 비타민D, 비타민K2 등 다른 함량도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제품 가격은 다이소에선 30정에 5천원, 약국 등에선 60정에 3만4,900원으로 3배 넘게 비싸죠.
다이소 영양제의 함량이 약국 영양제보다 적다고 해도 가격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약사들 생각은 다소 달랐는데요. 단순 함량 차이보다 약효를 잘 발휘하게 하고 체내 흡수율을 높이게 하는 '비타민 K2'가 들어 있느냐 없느냐가 품질과 결국 가격까지 좌우했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약사업계도 제약업계도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될 겁니다. 다이소 건기식이 ‘빛 좋은 개살구’, ‘속빈 강정’, ‘싼 게 비지떡’일지 아닐지는 소비자 판단에 맡겨두는 것이 합리적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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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민(moonbr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