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 최덕재 경제부 기자>
[앵커]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의료현장에선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요.
이 갈등의 탈출구는 없는 걸까요.
경제부 최덕재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자]
네, 안녕하세요.
[앵커]
최근 응급실의 진료 역량이 위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될까요.
[기자]
네, 숫자로 얘기하는 게 가장 정확하겠죠.
당장 '위험 수준'이라고까진 하기 어렵겠지만 우려가 커지는 상황인 건 맞습니다.
의료기관이 직접 작성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이란 게 있는데요. 이 상황판으로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 총 180곳의 후속 진료 가능 여부를 분석해봤습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상급종합병원 또는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 중에서, 지역응급의료센터는 종합병원 중에서 지정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큰 병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지난 5일 기준으로, 이 180개 병원들 중 27가지 중증질환·응급질환의 진료가 가능한 곳은 88곳이었습니다.
물론 180곳 모두가 24시간 내내 중증·응급 진료가 가능한 건 아닙니다.
평시엔 109곳 정도가 진료를 할 수 있으니까, 결국 평시에 비해 진료 역량이 20% 가까이 줄어든 겁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상황이 안 좋은 진료 분야는 성인 기관지 응급내시경입니다.
평시에 109곳에서 진료할 수 있었지만 최근 60곳으로 줄었습니다.
축소폭이 45%나 됩니다.
중증 화상을 진료하는 응급의료센터의 경우 평시 44곳이 가능한데, 최근엔 28곳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안과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응급의료센터는 평시에 75곳 정도 되는데, 절반을 조금 웃도는 47곳으로 줄었고, 절단된 신체를 접합하는 수술도 평시 82곳에서 62곳으로 줄었습니다.
각종 사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어 우려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앵커]
네, 그럼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정부입니다.
그동안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정부가 한 발 양보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의대 정원을 '원점부터 재논의 할 수 있다'고 했는데요. 이게 효과가 좀 있었나요.
[기자]
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더 기다려봐야 되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일 처음 의대정원 확대 발표가 났을 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의사들이 단체 휴진까지 거론하며 거세게 저항했지만, 정부는 의대 정원 규모나 시기 등을 당초 계획대로 진행했습니다.
정부는 의사 증원을 결정하면서 과학적 근거로 고령화 인구 구조 변화 인한 의료 수요 폭증,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접근권 격차 해소, 전문 진료의 세분화, 필수분야 이탈 확대,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 수요 변화 등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의정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는 건데, 최근 나름 주목할만한 입장 변화의 신호가 감지됐습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조정을 시사하고 나선 겁니다.
신호탄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쏘았습니다.
한 대표는 지난 6일 "의대 정원 문제로 장기간 의료 공백 상황이 발생하면서 국민 불편이 가중되고, 의료 공급 체계에 대한 국민 불안이 크다"면서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지역 필수 의료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의' 입니다.
그러니까 협의 대상에 의료계를 포함하겠단 건데요.
그동안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를 위해 의료계를 포함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의료계의 거부로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2,000명이라는 의대 정원 확대 규모나 증원 시점 등에 대한 근거를 마련할 때도 의료계는 의대증원 백지화를 주장하며 사실상 소통을 거부한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예전 의료 파업 당시부터 이어져 온 의료현안협의체라는 기구가 있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습니다.
정부와 의료계를 대표해 의대정원 문제를 담판지을 수 있다고 할 만한 인사들은 잘 참석하지 않았고, 비공개 회의 후엔 입장차를 재확인하는 데에 그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 대표의 제안에 대통령실이 화답하며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대통령실은 "제안에 대해 긍정적"이라며 "의료계가 대화의 테이블에 나오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 문제는 의료계가 합리적 안을 제시하면 언제든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앵커]
이 '제로베이스'를 또 주목해야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원점'에서 재논의할 수 있단 건데요.
여기에 맹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재논의 대상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대로, 정부는 '2026년도'를 재논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의료계는 어떨까요.
[앵커]
의료계 입장은 많이 다른가요.
[기자]
네, 예상하시겠지만 의료계는 생각이 다릅니다.
'원점 재논의' 대상이 2026년도가 아니라 당장 내년도여야 한다는 겁니다.
얼마 전 단식까지 했죠.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SNS에 "2025년 의대 정원 원점 재논의가 불가한 이유와 근거는 무엇입니까?"라고 올렸습니다.
사실상 당정의 '제로베이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의협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기세인데요.
공식 입장을 내놓은 건 아니지만, 의협은 2025년 뿐만 아니라 2026년 의대 증원 계획까지 백지화하고, 재논의는 2027년 정원부터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이 중단되지 않으면 유급된 의대생까지 더해져 2026학년도에도 입학이나 교육 등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설명입니다.
지역별 의사단체들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경기도의사회도는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은 이번 사태의 원인인 2025년도 의대 증원 강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본질을 왜곡한 꼼수 주장"이라면서 "진정성이 있다면 증원의 즉각적 중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대통령의 사과,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 박민수 차관, 장상윤 사회수석의 파면까지 요구했습니다.
서울시의사회도 "2025년 입학 정원 재검토가 없는 협의체는 무의미하다"고 못 박았습니다.
또, "의대 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하지 않는다는 2020년 9·4 의정 합의를 위반한 복지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앵커]
의료계가 내년도 입학 백지화, 복지부 장관 등 주요인사 파면 등을 요구하는데 과연 협상이 가능할까요?
[기자]
정부도 나름 양보한 상황이라서 그대로 다 받아들여지긴 어려울 겁니다.
내년 의대 정원의 경우 이미 대학별 입학 인원이 확정됐고 수시모집도 진행 예정이라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사과나 파면도 비슷하겠죠.
다만 의료계가 이렇게 강경한 입장을 내놓는 건 협상의 기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상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먼저 내걸고, 점차 요구 수위를 낮춰가는 거죠.
먼저 말을 꺼낸 정부도 성과를 내고 싶을 겁니다.
마침 다음 주면 추석 연휴니까 추석 연휴를 전후해 협상 성과가 나오길 기대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추석 밥상 민심이란 게 있으니, 정부 입장에선 가능하면 추석 전에 결론을 내는 게 좋을 겁니다.
한편,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의료계의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합리적 의견 제시가 없으면 여야의정 4자 협의체에서 논의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의료계의 의견 듣고자 지난 2년 가까이 노력했으나 증원을 거부할 뿐 의견 제시 없었다"면서 "지금이라도 의료계에서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의료 수요 예측과 증원규모 제시해주면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의대교수와 병원 관계자 상당수도 의대 증원 자체에는 공감하고 있으며 의료정책은 우리 모두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머리를 맞대야 할 과학적 과제"라면서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해온 공직자들에 대한책임추궁 경질은 절대 불가 입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벌써부터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관계자 등에 따르면 여야 정책위의장들이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위한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협의체 규모는 주체별로 3명에서 4명이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추석 연휴 전 1차 회의를 여는 게 목표로 보이는데, 의료계 참여 대상 확정을 위한 물밑 접촉도 진행 중일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의료계가 내년도 입시 백지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추석 전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 어려운 만큼, 우선 여야정 협의체를 꾸리고 이후 의료계의 참여를 독려할 수도 있습니다.
[앵커]
이번 주에 치열하게 협상이 이뤄지겠군요.
마지막으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 상황도 짚어보죠.
[기자]
네, 이번 의정갈등의 불씨를 당긴 전공의들은 여전히 무응답 전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원래 전공의는 수련 기간 중 공백이 발생하면 추가 수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추가로 수련해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을 넘기면 그해 수련을 수료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매년 초에 있는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게 원칙인데, 정부는 정부는 전공의들이 복귀하면 추가 수련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지 않도록 공백 중 3개월을 면제해주겠다는 방침입니다.
복귀만 하면 바로 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단 건데, 역시나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입니다.
최근 현안에서 한 발 불러서 사태를 지켜보다, 결정적일 때 나서지 않을까 전망해 봅니다.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수도권 9개 국립대 2학기 의대생 등록금 납부 현황을 보면, 현재까지 등록을 마친 의대생은 180명으로, 재학생 대비 3.8%에 그쳤습니다.
수강 신청 인원은 277명으로 5.9%였습니다.
[앵커]
네, 가능하면 추석 전에, 의정 갈등을 풀 물꼬가 트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경제부 최덕재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최덕재 기자 (DJY@yna.co.kr)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