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 지성림 연합뉴스TV 정치부 기자>
[앵커]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지난해 여름 우리나라에 망명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는데요.
조 전 대사대리가 어떤 사람인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통일부를 출입하는 지성림 기자가 스튜디오에 나왔는데요.
여러 궁금증에 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지 기자도 탈북민이죠?
같은 탈북민 입장에서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 사실이 15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공개된 걸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기자]
탈북민 중에는 저처럼 기자를 하는 사람도 있고, 태영호 의원 같은 정치인도 있고, 북한인권단체 대표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신분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활동합니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 친척들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런 리스크를 감내하고 자신을 오픈하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는 많은 탈북민은 북한에 있는 가족의 신변이 걱정돼 자신을 드러내는 걸 싫어합니다. 조성길 전 대리대사 역시 자신의 한국 망명으로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북한으로 송환된 딸이 혹시나 박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돼 지금껏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작년 7월에 입국했지만 15개월 동안 그의 한국 망명 사실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거죠. 그의 한국 망명 사실이 이번에야 공개된 배경을 놓고 야권에서는 정부 여당이 북한군에 의한 우리 공무원 피살 사건,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편의 미국행 논란 등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물타기용으로 의도적으로 흘렸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각에서는 조 전 대사대리의 부인인 이 모 씨가 딸 걱정에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며 언론에 스스로 제보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배경이 어찌 됐든 저는 자신의 거취가 공개되는 것을 조 전 대사대리 본인은 절대로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공개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조성길 망명에 대한 언론 보도, 그리고 이를 확인한 정치인들의 언행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추후 면밀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듣고 보니 같은 탈북민의 입장에서 마음이 불편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조 전 대사대리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한국에 온 사실이 공개됐고, 또 시청자들도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은데 기본적인 팩트만이라도 정리를 좀 해주시죠.
[기자]
네, 그래서 제가 오늘 이 스튜디오에 나온 겁니다.
[앵커]
사실 이번에 언론에서 조 전 대사대리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그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이후로 한국에 온 최고위급 인사다, 또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첫 대사급 외교관의 망명이다, 이런 주장들 때문인데요. 지 기자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분이 진짜 고위급 인사가 맞나요?
[기자]
저도 어제 기사를 쓰면서 다른 언론들과 형평성을 좀 맞추는 차원에서 '대사급 망명'이라고 제목을 달긴 했지만, 사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 정도의 고위급 인사는 아닙니다. 제가 고위급이 아닌 평민 출신 탈북민이어서 조 전 대사대리를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라, 북한의 간부 시스템에 대해 시청자분들이 제대로 알길 바라서 설명해드리는 겁니다. 사실 '고위급'이란 말은 상대적인 표현인데요. 대부분의 평범한 탈북민에 비해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이면 분명히 고위급 인사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특히 이 분은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을 이유로 이탈리아 정부가 문정남 대사를 추방한 이후 '임시대리대사'의 직함으로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의 책임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어쨌든 재외공관장의 권한이 있었던 건데 정확히 말하면 공관장인 대사가 공석이 되면서 공관 차석이 대사를 대리한 거죠. 하지만 대사를 대리했다고 해서 대사와 같은 급으로는 보지는 않잖습니까? 조 전 대사대리의 직급과 관련해서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소셜미디어에서 잘 설명을 했던데요. 조 전 대사대리의 직급은 1등서기관인데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엔 서기관보다 높은 참사관이나 공사참사, 공사가 원래 없었습니다. 북한이 공관 차석 자리에 공사를 앉히는 곳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 주유엔 대표부뿐입니다. 이런 곳에 나가 있는 공관과 달리 이탈리아 공관은 사이즈가 작아서 1등서기관이 공관 차석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대사가 추방되니까 차석인 조 전 대사대리가 공관장 역할을 했던 것뿐입니다. 언론사에서도 출입처에 팀으로 나갈 경우, 팀장이 있다면 차석이 있고, 막내 기자가 있는 식인데 10년 차 기자가 차석일 수도 있고, 3년 차 기자가 차석일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북한은 보통 외무성 국장을 큰 나라의 대사로 보내고, 부국장은 공사나 작은 공관의 대사로 내보내고, 과장급은 참사관으로 내보냅니다. 조 전 대사대리는 1등서기관, 즉 외무성 과장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직급이라고 보면 됩니다.
[앵커]
지 기자, 설명대로라면 주영국 북한 대사관 공사를 지냈던 태영호 의원보다도 높은 급이 아니란 거네요?
[기자]
네, 맞습니다. 북한의 인사 시스템상 조 전 대사대리는 태영호 의원보다 두 단계, 혹은 세 단계 정도 급이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 의원은 본인이 외무성 부국장으로 있을 때 조 전 대사대리는 외무성 5과의 이탈리아 담당 부원으로 근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과장도 아니었죠. 태 의원은 부국장으로 있다가 주영국 대사관 공사로 나갔고, 조 전 대사대리는 과장 밑의 부원으로 있다가 주이태리 대사관 1등서기관으로 나간 겁니다. 자, 결국 태 의원보다도 직급이 2~3단계 낮았던 외교관을 두고 황장엽 이후 최고위급 망명이라느니, 김정은 집권 이후 첫 대사급 망명이라느니, 이렇게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겁니다.
[앵커]
일부 언론은 조 전 대사대리가 김정은 일가의 사치품 조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북한 로열패밀리의 사치품 리스트나 구매 경로를 잘 아는 사람이 한국에 왔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노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이탈리아가 북한의 사치품 조달 통로 중의 하나인 건 맞잖아요. 조 전 대사대리가 실제로 사치품 구매에 관여했나요?
[기자]
네, 2009년에 이탈리아 세관 당국이 북한으로 가려던 고급 양주 420병과 호화 요트 2척을 압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가 북한 사치품 조달 통로 중의 하나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조 전 대사대리가 이탈리아 공관에서 근무했다고 해서 그가 사치품 구매에 관여했다고 연관 짓는 것은 북한의 사치품 조달 시스템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김정은 일가의 사치품 조달은 노동당 39호실에서 담당합니다. 39호실은 대통령 비서실 격인 노동당 서기실의 관리와 통제를 받는 부서인데요. 각종 수출입 사업과 이권 활동을 통해 김씨 일가의 비자금을 만드는 조직입니다. 39호실은 유럽 주요 국가나 중국, 러시아 등에 해외대표부를 두고 있는데 보통 '대성총국 중국 지사' 이런 식으로 위장 기업의 형태로 활동합니다. 김 씨 일가의 비자금을 만드는 조직이니, 당연히 로열패밀리의 사치품 구매도 이 39호실이나 서기실에서 담당하는 겁니다. 결국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등 현지에서 사치품을 사들이는 사람들은 39호실의 해외 주재원들입니다. 이들에게 사치품을 구매할 자금도 있고, 외국 상인들과 직접 거래할 권한도 있는 겁니다. 북한은 조 전 대사대리와 같은 직업 외교관에게는 비자금을 맡기지도 않고, 사치품 구매와 같은 일을 책임지게 하지 않습니다. 가끔 외교관들이 39호실 해외 주재원이 사치품을 사들이거나 북한에 보낼 때 심부름을 하기도 하지만, 직급으로 보면 39호실 주재원이 외교관에게 지시하는 구조입니다.
[앵커]
사치품 조달과도 연관이 크게 없는 평범한 외교관이란 얘긴데요. 일부 언론은 조 전 대사대리가 조연준 전 노동당 검열위원장의 아들이라고 보도했잖아요. 최고위급 인사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보세요?
[기자]
조연준이 최고위급 인사였던 건 맞습니다. 조연준은 김정은 정권 출범과 함께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오른 인물입니다. 특히 '당중앙 중의 당중앙'으로 불리는 본부당 책임비서도 겸직했는데요. 노동당 부위원장을 비롯한 최고위급 간부들의 당 생활을 통제하는 역할이어서 핵심 실세였다고 할 수 있죠. 5년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하다가 2017년 10월부터 작년 12월까지 노동당 검열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습니다. 조연준이 최고위급 인사인 건 맞지만, 조 전 대사대리의 아버지라는 것은 아직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부분입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개연성이 낮지 않나 싶습니다. 조 전 대사대리가 잠적한 게 2018년 11월입니다. 북한 말로는 행방불명이라고 하는데 외교관의 행방불명은 큰 사안입니다. 조연준은 작년 12월까지 검열위원장으로 있었는데 그가 아무리 핵심실세였다고 해도, 아들이 재외공관에서 이탈해 행방불명되고 나서도 1년 넘게 검열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건 북한 시스템상 납득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다른 고위 간부들이 용납을 하지 않을뿐더러 북한의 간부 사업 원칙과도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조 전 대사대리를 잘 안다는 태영호 의원도 그의 부친은 대사였다, 즉 외교관 집안 출신이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지 기자, 얘기를 들으니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 마치 사실인 양 확산하고 있네요. 자, 그럼 마지막으로, 조 전 대사대리가 그렇게 엄청난 고위급 인사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사라진 외교관이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공개된 거잖아요.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요?
[기자]
네, 대체적인 분석은 '별로 영향이 없을 거다'라는 겁니다. 조 전 대사대리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거랑 남북관계와는 사실 큰 상관이 없습니다. 북한은 한국에 와서 공개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숨어 사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탈북민단체 대표들이나 태영호 의원과 같이 공개적으로 김정은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각종 매체를 통해 "그들은 애초에 범죄자들이었다"고 비난하고, 또 그 사람들을 빌미로 남쪽 정부까지 맹비난하면서 격하게 반응을 합니다. 한국에 와 있는 고위급 탈북민 중에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도 꽤 있는데요. 북한은 이런 사람들을 겨냥해 공식적으로 비난하거나 반응을 내놓거나 하지 않습니다. 북한을 건드리지 않으면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고 무시하는 방식인데요. 조 전 대사대리에 대해서도 북한은 직접적인 반응을 내놓거나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북한이 조 전 대사의 한국 망명에 대해 우리 정부를 비난하거나 한다면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이 이번 일로 문재인 정부를 비난할 명분은 없어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기 중국에 있던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이 집단탈출한 것처럼 '기획 탈북'도 아니고, 조 전 대사 본인이 한국행을 선택한 것이고, 또 조 전 대사 본인의 요청이기도 하지만, 정부·여당은 그가 한국에 와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소문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던 부분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북한이 이번 일로 문재인 정부를 트집 잡는다면 그건 정말 억지인 거고요. 어차피 현재의 남북관계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데 이번 일로 북한과의 대화가 더 어려워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북한은 조 전 대사대리가 한국에 와있다는 게 알려진 이상 내부적으로는 그를 '배신자', '변절자'로 규정하고,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교양 등에서 비난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북한 내부의 문제이지, 남북관계와 연관 지을 일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한국 망명이 공개되면서 북한에 남아있는 조 전 대사대리의 딸에 대한 처우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변절자의 자식'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언론이든, 정치권이든 조성길이란 사람에 대한 관심을 꺼주는 것이 그분 본인을 위해서나, 북한에 있는 그분의 딸을 위해서나, 그리고 남북관계를 위해서나 좋은 게 아닐까.
[앵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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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