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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위대한 5일…민주주의 불 지핀 부마항쟁

정치

연합뉴스TV 시민들의 위대한 5일…민주주의 불 지핀 부마항쟁
  • 송고시간 2019-10-16 18:18:42
시민들의 위대한 5일…민주주의 불 지핀 부마항쟁

[앵커]

40년 전 부마항쟁은 이듬해 5월 광주로 이어지는 민주화의 초석을 다진 민중 의거였습니다.

올해야 국가가 챙기는 기념일로 지정돼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합니다.

임혜준 기자입니다.

[앵커]

1979년 10월.

부산대 학생들의 '민주선언문'으로 시작된 시위는 삽시간에 마산과 창원으로 번졌습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일반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유신 정권 첫 반독재 민중항쟁으로 발전했습니다.

유신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는 목소리는 모두가 같았습니다.

이어진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시위 진압에 탱크를 앞세운 공수특전부대가 투입됐습니다.

수천 명이 연행됐고 끔찍한 인권유린이 뒤따랐습니다.



<부마항쟁 증언> "누가 시켰냐고 물어서 (배후가) 없다고 아무리 해도 안돼요. 하도 못 견뎌서 울면서 말할게요. 말할게요."

부마항쟁은 민주주의의 봄날을 끌어냈습니다.

시위를 현장에서 목격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탱크로 깔아뭉개자는 경호실장 차지철이 사태 수습을 놓고 극한 갈등을 빚었고, 결국 김재규가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을 시해하면서 유신독재는 막을 내렸습니다.

부마는 그렇게 민주주의의 새벽을 열었지만, 40년이 지나 비로소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숙제는 여전히 남았습니다.

국가의 인정한 부마 항쟁의 피해자는 200여 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30일 이상 구금자만 보상 길이 열려있습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조사 위원회는 오는 12월로 활동이 종료됩니다.

<문재인 / 대통령> "숫자로만 남아있는 항쟁의 주역들과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찾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할 것이며, 국가폭력 가해자들의 책임 소재도 철저히 규명하겠습니다."

5월 광주민주화운동과 87년 민주 항쟁의 주춧돌이 된 부마항쟁.



잊혀진 역사에서 되살아나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점이 됐습니다.

연합뉴스TV 임혜준입니다. (june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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