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이광빈 기자]
안녕하십니까 이광빈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이 풀어갈 이슈, 함께 보시겠습니다.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과거 영화 '괴물' 흥행에 힘입어 한강에는 영화 속 괴 물을 본뜬 조형물이 설치됐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도는 떨어지고 혐오스럽다는 지적에 10년 만에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됐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전반적으로 공공조형물 설치를 위한 과정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초대형 가마솥, 최대형 큰북 등 실폐 사례들도 다시 부각되는데요. 공공조형물 설치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화영 기자가 한강의 '괴물' 조형물 철거 문제부터 짚어보겠습니다.
[한강 '괴물' 조형물 추억 속으로…불편한 시선에 철거 운명 / 이화영 기자]
[기자]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괴물'의 무대가 된 한강에 들어선 '괴물' 조형물.한강에 스토리텔링을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취지로 설치됐는데 10년 만에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오세훈/서울시장(지난달 25일, 유튜브 오세훈TV)>
"영화에 나왔던 괴물은 공공미술의 기준에는 맞지 않는데 지나치게 오랫동안 설치돼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그 장소에서 한강변에서 치워야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했고…"
미술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이들도 편히 볼 수 있는 게 공공미술이지만 무섭다는 반응이 나오는 등 본래 취지와는 맞지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는 최근 괴물 조형물을 철거하거나 재활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화영 기자>
"현재 서울시가 관리하는 한강공원에는 이 괴물 조형물을 포함해 총 46개의 공공미술작품이 있습니다. 시는 이들 작품 전반에 대해 철거 여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한강공원을 오가며 조형물이 익숙해진 시민들은 철거가 아쉽다는 반응이지만,처음부터 신중하게 만들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상중/인천 서구>
"한강을 대표하는 조형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런 조형물이 없어지는 건 한편 아쉽지만, 저 공간을 대신해서 추가적인 서울시의 이득이 될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을까…"
<최영진/경기 고양시>
"좀 못 만들었다? 약간 이런 생각이 들고 굳이 저걸 만들었어야 되나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걸 계기로 다음에는 조금 더, 차라리 돈을 더 투자해서 좀 더 퀄리티 있게 만들거나…"
괴물 조형물 설치에는 1억 8천만 원 가량의 예산이 투입됐는데 공공미술 작품 설치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효과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안선우/서울 서초구>
"큰 비용이 들어가 있으니까 조금 의미가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큰 의미가 없었던 조형물은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김연미/서울 도봉구>
"공공조형물을 이렇게 한강에 설치하는 건 좋은 것 같은데 미관상 좀 안 어울리는 조형물 같은 건 조심해서 비싼 비용이 들어가니까 고려해서 설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일상 곳곳에 자리한 공공미술 작품들이 빛을 발하기 위해선 계획 단계부터 주변 환경을 고려해 작품이 갖는 의미를 더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연합뉴스TV 이화영입니다.
#괴물 #공공미술작품 #공공조형물
[이광빈 기자]
막대한 예산을 들였지만,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조형물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찾는 이들이 없어 방치되는 조형물들이 수두록합니다. 철거도 못한 채 흉물이 되는 경우도 생기는데요. 이런 가운데서도 공공조형물 만들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경인 기자입니다.
[혈세 부어 만들곤 방치·철거…공공조형물, 애물단지 전락 / 김경인 기자]
[기자]
지난 2005년 충북 괴산군이 만든 초대형 가마솥입니다. 둘레만도 18m에 달합니다.
기네스북 등재를 목표로, 군민 성금 등 5억 6,000만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습니다. 호주에 밀려 정작 기네스북 등재는 실패했습니다. 가마솥이지만 열 전달이 고르지 않아 밥을 지을 수도 없습니다. 시민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지역 주민>
"저걸 농기구를 만들어서 국민들한테 재활용시킨다든지 그런 방법이 더 좋지 않을까… 어떤 전시성 그런 부분이라고 보이기도 하죠." 광주시청 앞 광장에도 골칫거리가 있습니다.
<김경인 기자>
"2005년 제1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개최 당시 후원을 받아서 광주시청 앞 광장에 설치한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기원'이라는 작품입니다. 높이가 16m가 넘고, 직경이 18m에 달하는데요, 광주시는 2008년부터 여러 차례 존치 여부를 고심해왔습니다."
설치 당시 계절별로 옷을 갈아입혀 광주시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서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한 번에 2,000만원의 천 교체 비용은 부담이 됐고, 비바람에 수시로 찢겨 나갔습니다.
광주시가 최근 이전·철거를 검토했지만, 작가 유족의 동의를 얻지 못해 무산됐습니다.
<광주시 관계자> 0344~0350, 0354~0356
"철거하자니 작가 측의 의견도 이제 그렇게 나왔고, 이전을 하자니 이전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그래서 이제 (활용 방안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가 2010년 16억원을 들여 만든 '거제 거북선'은 지난해 철거됐습니다.
고철은 고물상에 팔리고, 목재는 폐기물로 소각됐습니다.
제작 당시 국내산 금강송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업체가 수입 목재를 사용해 '짝퉁' 논란이 일었습니다.
공공조형물 제작에 막대한 예산이 드는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타당성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기우식 /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사무처장> 0031~0042
"지자체장들의 치적을 위해서 규모를 크게 만든다거나 이런 방식으로 치적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런 조형물이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혈세를 들였지만 방치하거나 철거하고, 또 의견 수렴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자체의 공공조형물들. 만들기 전 충분한 고민이 절실해 보입니다.
연합뉴스TV 김경인입니다.
#조형물 #혈세 #세금 #낭비 #애물단지 #방치 #골칫거리
[진행자 코너]
유럽의 경우 많은 도시의 랜드마크는, 대부분 오랜 역사 속에서 하나 둘씩 만들어졌는데요. 2차 세계대전 이후, 비교적 현대에 들어 랜드마크들이 마련된 도시가 있습니다. 바로 독일 수도 베를린입니다.
베를린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많은 약자를 학살한 나치 독일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전후 독일은 전체주의의 폐해와 전쟁 범죄에 대한 반성적 차원에서 기념 조형물들을 만들어 나갑니다.
베를린의 운터덴린덴 거리는 중세, 근대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인데요. 과거 건물과 공공조형물들은 찬란했던 중세, 근대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반성과 성찰을 담아낸 '기억의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운터덴린덴 거리에는 왕궁을 지키는 위병소인 '노이에바헤'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육중한 고전주의 건물 안에는 텅 빈 공간에 청동상 하나가 놓여 있는데요.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를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전쟁의 포화에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비극과 그들의 어머니가 가슴에 안은 비통함을 상징합니다.
1993년 노이에바헤는 전쟁과 압제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립중앙추도관으로 헌정되면서 평화주의자인 조각가 케테 콜비치의 작품을 확대 복제했습니다. 이곳은 이제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큰 울림과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운터덴린덴 거리에 있는 베벨광장의 도서관 역시 함축적으로 전체주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조형물입니다.
베벨광장 한복판 바닥에 놓인 작은 유리창 안쪽에는 사방에 빈 책장이 있습니다. 나치 독일이 1933년 나치에 비판적인 당대 저명한 지성인들의 책 2만권을 태웠는데요. 독일은 통일 이후, 분서 사건 60주년을 맞아 이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이와 함께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 거리 곳곳에선 가로·세로 10㎝ 크기의 동판들이 집 앞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92년부터 그들이 살던 집 앞에 설치한 동판입니다. 유대인의 이름과 출생·사망 연도, 사망장소가 적혀 있습니다. 이런 동판 문화는 우리나라에서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베를린 연방의회의사당 인근 슈프레강 가에는 동서독 분단 시절 서베를린으로 탈주하려고 헤엄쳐 강을 건너려다 동독 경비병의 총격에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흰색 십자가들이 놓여 있습니다. 규모가 대단해보이는 조형물도 아니고, 많은 예산이 들어간 조형물이 아닌데요. 지금 베를린 날씨에는, 강둑 잔디밭에서 햇볕을 쬐는 시민들이 많을 텐데요. 그들의 일상 속에 기억의 문화가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보여주기가 아닌 시민이 갖고 있는 공통의 가치와 기억이 들어간 조형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간 조형물에 외지인도, 관광객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광빈 기자]
보신 것처럼 한번 놓여진 공공조형물은 철거도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요. 쉽게 놓여지고,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공공 조형물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 걸까요? 전문가들의 의견을 신새롬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철거도 쉽지 않은 거리의 예술…'세우고 보자'식 피해야 / 신새롬 기자]
[기자]
미국 시카고의 상징으로 불리는 '클라우드 게이트'설치만 2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유인하는 도시의 랜드마크로 통합니다.
광화문에도 설치된 조각가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연작 '해머링 맨'도 전 세계적인 공공 조형물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하루 종일 내리치는 망치질이 '노동의 가치'를 되새기고, 지친 직장인들을 위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거리의 조형물은 일상 속 미술관 역할을 합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신축ㆍ증축할 경우, 건축비의 1% 이하 범위의 미술품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이 법으로 거리에는 예술작품이 늘어났고, 시민들은 쉽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 박찬걸 / 한국 조각가협회 부이사장 >
"우리의 역사는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면서 정서적 휴식에 인색한 문화가 형성되었어요. 누군가는 공공 미술품을 바라보며 인생을 생각하기도 하고 잠시 쉼을 얻기도 하며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길 위에서는 예술이 해야 되는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없으니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공공 주도의 설치 조형물들입니다. 이런 공공기관 발주 조형물의 경우 조달청 기준으로 자격 기준이 높아, 전문 작가들은 소외된 채 소수 기업의 독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재언 / 미술평론가>
"조달청 입찰 방식은 정량적인 평가 항목에 실적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자본금, 실적, 인원, 기업화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작가가 역량은 좋지만, 그러한 시스템이 없다 보니까 공모나 입찰에 참여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어요.
수준 높은 공공 조형물을 늘리기 위해서는 입찰방식을 공모로 개선하고, 개인 작가들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또 전문가들은 에펠탑처럼 시간이 흘러 재평가받는 조형물들도 많은 만큼, 작품 선정 과정에서부터 유연함을 열어두되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디다.
<박민정 / 상명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
"공공 조형물은 공간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와 결합하면서 예술의 가치를 표현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조형물이어야 하겠습니다. 대중성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예술성이 부각되는 조형물들을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도시의 인상을 바꾸기도 하고, 도시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하는 공공 조형물.
미술계는 이미 2만여 개 넘는 공공 조형물이 설치된 상황에서, 전국적인 조형물 실태를 조사하고 유지ㆍ관리, 재배치 등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연합뉴스TV 신새롬입니다
#공공조형물 #해머링맨 #입찰
[클로징: 이광빈 기자]
낭만적인 꿈의 도시, 프랑스 파리하면 에펠탑을 떠올릴 겁니다. 1889년 3월 31일 준공된 에펠탑, 처음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었는데요. "무너지면 사람 다 죽는다"는 일반인들의 공포, "비쩍 마른 피라미드", "예술 도시 미관을 망치는 흉물"이라는 혹평을 듣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시민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는데요. 랜드마크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지속적인 관리와 관심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공조형물. 조성부터 관리하기까지 막대한 예산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면 애물단지가 돼 지역 경관에 해를 끼치기도 하는데요.
공공조형물은 시민들의 문화적 성숙도와 연결됩니다. 역사와 현재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가들을 발굴해 작품세계를 펼칠 기회를 주는 것도 결국은 시민사회의 성숙도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공공조형물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건, 지방자치단체들의 행정 수준보다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우리 마을과 도시에 대한 기억에 관심을 가질수록, 주변 조형물들의 수준도 올라갈 것입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PD 임혜정
AD 최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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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