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1일부터 디지털화폐(CBDC)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예금토큰을 활용해 실제 매장에서 결제해 보는 방식으로, 오는 6월 30일까지 10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테스트입니다.
기자가 직접 실험에 참여해본 결과, 가능성은 엿보였지만 일반화까지는 넘어야 할 문턱도 보였습니다.

◇ 주거래 은행 앱으로 시작…“익숙하지 않다면 헷갈릴 수도”
기자는 주거래 은행인 우리은행의 ‘우리WON뱅킹’ 앱을 통해 디지털 지갑에 가입했습니다.
통신사 인증과 신분증 촬영, 안면 인식 등 본인 확인을 거친 뒤 금융거래 목적, 자금 출처 등을 입력해야 했습니다.
이후 간편 비밀번호 설정과 계좌 연동까지 마치니 약 15분이 걸렸습니다.
디지털에 익숙한 사용자라면 무난한 수준이지만, 예금토큰 지갑이 앱 어디에 있는지 찾는 데 시간이 걸렸고, 인증 절차도 많아 고령층이나 초보자에겐 다소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입을 마치면 계좌에서 전자 지갑으로 금액을 이체해 예금토큰으로 전환할 수 있고, 다시 현금으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 교보문고·세븐일레븐서 써보니…“할인? 아직은 글쎄”
예금토큰 거래 테스트 이튿날, 첫 결제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이뤄졌습니다.
은행 앱을 켜고 예금토큰 지갑을 연 뒤, 비밀번호 입력 과정을 거쳐 QR코드 실행까지 몇 단계를 거쳐야 했습니다.
1만9천원짜리 책을 구매했지만 할인은 없었고, 매장 내엔 디지털화폐 안내나 홍보물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서점 직원은 “아직 예금토큰으로 결제한 손님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으로 한국은행 인근 세븐일레븐에서 예금토큰을 썼습니다.
세븐일레븐에선 예금토큰 결제 시 10% 할인이 적용돼 1,200원짜리 비타민C를 1,080원에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1 등 편의점 행사 상품은 할인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이 때문에 2+1 행사 중인 초콜릿은 행사 가격 그대로 2천원이 적용됐습니다.
점주는 “어제 2~3명이 예금토큰으로 결제했는데 아마 한국은행 직원들이 실험한 것 같다”며 “예금토큰 결제로 인한 할인액은 본사와 점주가 절반씩 부담하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외에도 이디야커피 20여개 매장에서 예금토큰 결제가 적용되며, 땡겨요 등 온라인 결제는 4월 둘째주부터 적용될 예정입니다.
결제 자체는 문제 없었지만, 삼성페이 등 다른 간편결제 수단과 비교했을 때 아직은 ‘왜 써야 하는가?’란 의문은 남았습니다.

◇ 결제 실험 다음은?…“일상에 스며드는 디지털화폐”
이번 실험은 디지털화폐가 일상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를 점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사람이 몰리는 상황에서 지갑 개설에 문제가 없는지,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등 기술적인 요소를 집중 모니터링 중입니다.
윤성관 한국은행 디지털화폐연구실장은 “은행별로 편차는 있었지만, 신청자가 수만 명에 이르는 곳도 있어 앱 접속과 결제 등에 안정성 테스트를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간편결제보다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선 “실험 단계이다보니 은행 앱과 토큰의 기술적인 통합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아 얼굴 인식이나 지문 인증 등이 적용되지 않았다”며 “정식 도입의 경우 개선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예금토큰은 결제 즉시 소비자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입금되며, 카드 결제보다 수수료가 낮다는 점에서 판매자 입장에서도 장점이 분명 있습니다.

한은은 디지털화폐에 향후 ‘프로그래밍 기능’을 넣어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은 특정 조건에서 결제가 이뤄지도록 하는 건데, 이를테면 자녀에게 용돈을 줄 때 서점에서만 결제되도록 하는 겁니다.
이 프로그래밍을 아주 쉬운 단계로 구현한 것이 ‘디지털 바우처’입니다.
이번 실험에도 서울시 청년문화패스, 대구 교육바우처 등 다양한 형태의 바우처가 포함됐으며, 4~5월 중 실거래 테스트에 들어갑니다.
윤 실장은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송금, 대금 결제 등 간단한 형태의 결제에서 복잡한 형태의 서비스까지 확장할 수 있다”며 “이는 블록체인 생태계의 장점 중 하나로, 향후 다양한 형태의 바우처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은은 하반기부터 개인 간 송금 기능을 추가로 실험하고, 병원·재래시장 등으로 사용처를 넓힌다는 계획입니다.
재래시장에선 계좌번호 없이 QR코드로 바로 송금이 가능해져 소상공인의 편의성이 높아지고, 병원에서는 카드 수수료 절감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한 대형 병원이 직접 제안에 나섰다고 한은은 설명했습니다.
결제 실험은 첫 단추일 뿐입니다.
디지털화폐가 얼마나 빠르게, 넓게 뻗어갈 수 있을지가 남은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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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섭(yhs93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