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가수 김건모의 노래 '잘못된 만남'의 첫 소절입니다.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불러봤을 텐데요. 이 소절은 제약·바이오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의 온라인 종목토론방에서도 자주 발견됩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과의 ‘잘못된 만남’ 때문일까요.
제약·바이오 종목 투자자들은 보통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신약 개발과 기술 수출에 성공할 것이라 믿고 그 작은 가능성에 투자하곤 합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해당 기업의 경영진이 기업을 투명하게 운영해 주가를 부양할 것이라는 믿음도 전제돼 있을 겁니다.
‘난 종목을 믿었던 만큼 난 경영진도 믿었기에’.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다만, 이러한 믿음은 종종 크나 큰 배신으로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이번 [문형민의 알아BIO]에서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대표적인 도덕적 해이로 꼽히는 주식 시장에서의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에 대해 알아봅니다.

◇ 코로나 치료제 안 될 거 알고 미리 팔았다?
불과 몇 년 전 코로나19가 대유행할 당시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 여러 곳이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죠.
개발을 시도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주가가 출렁일 때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신풍제약입니다.
신풍제약은 기존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를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2020년 2월 3일 6,400원대였던 주가는 2020년 9월 21일 장중 21만 4천원까지 30배 넘게 올랐습니다.
이후 주가는 폭등과 폭락을 반복했고 2021년 4월 창업주의 아들이자 실소유주인 장원준 전 대표가 갑자기 신풍제약 주식 200만 주를 팔아치웠습니다. 3개월 뒤인 같은 해 7월 6일 코로나19 치료제 임상2상 실패 소식이 알려지며 주가는 하루 만에 30% 가까이 폭락했습니다.
장 전 대표가 주식을 매도했을 당시 주가가 최고점은 아니었지만 손실을 피하기에는 충분한 시점이었습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최근 장 전 대표가 임상시험에 실패했다는 내부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대량 매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장 전 대표를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미공개 정보 이용을 통해 장 전 대표 등 오너 일가가 얻은 매매 차익은 1,562억 원, 회피한 손실액은 369억 원에 달할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장 씨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주식 매각 시점엔 임상2상 결과가 나오지 않아 관련 정보를 미리 알지 못했고, 매도 한 달 뒤에야 2상 결과가 최종 취합됐다는 입장을 회사를 통해 밝혔습니다.
◇ ‘미공개 정보 이용’ 논란, 어제 오늘 일 아냐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미공개 정보 이용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20여 년 전 과거로 돌아가 보죠.
2002년 7월 14일 조아제약에서 체세포 복제 돼지 ‘가돌이’가 탄생했는데요. 금융당국은 가돌이 탄생 전후로 수상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2002년 6월 26일 4천원대였던 주가가 출산을 앞둔 7월 11일부터 1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것입니다.
금융감독원은 미공개 정보 이용이 의심되는 계좌 수십 개를 바탕으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2002년 7월 11일 오전 열린 복제 돼지 출산 대책회의에 참석한 관계자 5명 중 일부가 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지난달에는 성장성 특례상장 1호 기업 셀리버리의 조대웅 대표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수억 원 규모의 차명주식을 매도하는 등 부당한 이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허위 사실을 발표해 주가를 띄운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제약·바이오 기업도 적지 않습니다.
일양약품은 자사 백혈병 치료제가 코로나19 치료에 우수한 효능을 보였다는 내용의 허위 자료를 내 주가를 띄운 혐의로, 김동연·정유석 공동대표 2명이 지난해 10월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습니다.
지난 2023년, 코로나19 진단키트 기업 피에이치씨(PHC)의 최인환 전 대표 등 관계자 7명도 허위 정보를 흘려 주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 제약·바이오 업계의 ‘성장통’인가 ‘만성질환’인가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런 불공정 거래 행위를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국내 의약품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입니다. 반복되는 문제들이 일시적인 ‘성장통’인지 ‘만성질환’인지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국내 한 제약사의 임원은 “미공개 정보 활용, 성과 부풀리기 등 도덕 경영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기업들로 인해 산업 이미지가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본적인 책무를 지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제약·바이오 회사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무엇일까.
혁신 신약을 개발한다거나, 개발한 또는 개발된 신약을 수출·수입해 인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겠죠. 제약·바이오 산업이 단순 제조업과 구분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신약 연구개발(R&D)과 기술력 강화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면서,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경영진 등 관계자를 향한 내부통제 시스템 역시 재정비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해 거래한 자에 형사 처벌 이외에도 부당이득의 2배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도록 지난해 제도를 강화했는데요. 일부 몰염치한 기업 때문에 개미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엄중 처벌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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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민(moonbro@yna.co.kr)